해맑은 미소천사의 가르침

사는 이야기

해맑은 미소천사의 가르침

energypark 2021. 1. 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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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연휴 집에서 쉬면서 컴퓨터 파일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반가운 아래한글 파일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2009년에 작성한 파일이니까 벌써 11년이 넘은 파일이네요.

당시 제가 회사에서 대전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할 때입니다.  사회공헌 활동 사내 수기 공모전이 있었는데,  제출한 수기입니다.  자랑 같지만ㅎㅎ...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제목 : 해맑은 미소천사의 가르침

오늘은 미경이 만나는 날.  유미경.  9살의 지적장애1급.  중증 장애아동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지난해 8월.  우리 회사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인 평강의 집과 자매결연을 맺으면서부터다.  그리고 그 후 우리 사무실 직원들과 한 달에 2번씩 평강의 집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게 되면서 미경이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솔직히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할때 속마음은 그다지 달갑지 만은 않았다.  사무실에서 해야 할 일도 많은데,  한 달에 2번씩 봉사활동 당일의 오후 나절 시간을 거의 다 할애해야 한다.  게다가 몸도 가눌 수 없는 장애아동들을 돌보아야 한다니.... 이 무더운 날씨에 얼마나 힘들고 귀찮은 일인가.  속으로 투덜투덜 거리며 평강의 집을 찾았다.

그곳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우리가 부여 받은 일은 강당 청소. 날씨는 찌는 듯이 무더운데 꽤나 넓어 보이는 강당을 2인 1조가 되어 한 명은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이고 한 명은 젖은 걸레로 닦아내고... 어느새 땀이 얼굴에 목 뒤로 겨드랑이에 흔건해진다.  습하고 무더운 날씨가 더욱 짜증 나게 만든다.

그리고 다음 임무는 복도 유리창 청소. 마른 걸레로 깨끗하게 복도와 유리를 닦아 낸다.  이어서 실내 미화 작업의 일환으로 큰 유리창에 해, 달, 별 등의 예쁜 그림 스티커들을 붙이는 작업.  높은 유리창 위에 올라가 스티커를 붙이다 보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유리창 밑에서 기어 다니면서 손을 흔들고 아찌 아찌 하며 좋아한다.

그리고는 평강의 집 직원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이 있는 한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과 차례로 눈을 맞추고 저녁밥 먹여줄 준비를 한다.  처음하는 일이라 익숙지 않은 나는 지도 복지사의 모습을 보면서 어설프게 따라 했다. 그렇게 처음 밥을 먹여 주기 시작한 아이가 바로 유미경.

저녁밥이라고 준비한 묽은 죽을 입으로 건넸으나 미경이는 쉽게 넘기지 못한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는 미경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웬지 갑자기 마음속으로부터 무언가 울컥하는 감정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너무도 안타까웠다. 목 넘김 조차 쉽지 않은 아이에게 죽을 먹이는 일이 이렇게 가슴 아플 줄이야.

꼭꼭 씹어서 천천히 많이 많이 먹어~  미경이는 목이 메이는 듯 겨우겨우 삼켰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성심을 다해서 죽을 먹였다.  죽을 겨우 얼추 다 먹이고 나서 비로소 다 먹였다는 나름대로의 뿌듯함으로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는데.... 미경이가 날 위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저렇게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죽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미경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불현듯 내 딸아이 생각이 떠오르는 건 무슨 이유에서 일까.  내 딸아이는 이제 중학생.  몸은 벌써 엄마만큼 커졌고 사춘기가 되어서인지 가끔 아빠 엄마에게 이유 없는 반항이 시작되고,  예전 유치원 다닐 때와 같이 아빠 엄마에게 착 달라붙어 뽀뽀하고 재롱떨던 어린아이가 이제는 아니다. 

나는 그저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이 아비 마음에 애틋한 부성을 자극했던 딸아이의 어린이 시절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아빠 엄마에게 애정 표현을 아직까지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기는 어려워지겠지...... 몇 년 후면 살같이 빠른 세월 속에서 훌쩍 자라나서 어엿한 숙녀가 되어 있겠지.

내 딸아이의 귀여웠던 어린이 시절을 생각하며 함께 했던 재미있는 장난거리를 미경이에게 시도해 보았다.  휫바람 소리를 내면서 손가락으로 갑자기 겨드랑이를 간질이는 것이다.  휴~ 하면서 손가락 중지로 미경이의 겨드랑이를 사정없이 간지럽혔다.  미경이는 넘어갈 듯 까르르 거린다.  그러기를 대여섯 번.  너무 즐거워하며 깔깔거리며 한번 더 해달라는 표정이다.  우리는 이미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미경의 눈망울을 다시한번 찬찬히 바라보았다.  원래 예쁜 얼굴이기도 하지만 눈동자가 그렇게 해맑고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미경이는 내게 눈으로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아저씨!  나 같이 불편하게 살아가는 중증장애인도 이렇게 해맑은 미소로 살아가고 있잖아요.   힘내세요!   몸이 건강하고 함께 할 가족이 있다면 무슨 일을 감당해 나가지 못하겠어요!

아~ 그렇다! 내가 미경이에게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경이가 삭막하고 각박하지만 우리가 서로 더불어 도움을 주고받을 때,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배움을 내게 주고 있는 것이다.  똘레랑스(Toleracia)의 관용 정신을 내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미경아!   네가 아저씨에게 보여준 그 미소 언제나 간직하마.  항상 감사하며 살리라.  져주고 조금씩 양보하면 될 것을 아웅다웅 거리며 쓸데없는 아집과 부질없는 욕심으로 대립의 각을 세우고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다니는 나 자신을 냉철히 성찰해 보는 소중한 계기가 된 것이다. 

오는 6월 하순이면 평강의 집 봉사활동 10개월 되는 날.  난 이제 미경이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그 해맑은 눈동자의 천사는 인생역정의 중반 즈음에 서있는 나에게 또 어떤 가르침을 전해 줄 것인지......(이하 생략)

11년이 지난 지금 읽어보니 왠지 많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뭔가 마음을 자극하는 뭉클함이 저의 가슴에 다가옵니다.  갈수록 삭막하고 어려워지는 삶 속에 아직도 여러모로 부족한 나는  또 어떻게 배우고 적응하며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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